오랫만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술을 먹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더 기분 좋게 먹은 것 같다. 술을 먹는 것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술을 먹으면 서로 무엇이든 간에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오늘도 엄마랑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 씐나게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과묵한 편이라 이런 자리가 아니고선 서로 맘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어서 난 이런 기회를 좋아라하는 편이다. 가끔은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엄마아빠가 생각나기도 하고. 오늘은 이사온 후 처음으로 밖에 나와서 생맥주를 마신 것 같다+_+ 아직은 밤 날씨가 쌀쌀하긴 하지만 집 앞에 있는 BBQ에 갔더니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처럼 가족단위 손님이 두 테이블, 아저씨들만 앉아있는 테이블이 하나. 사실 테이블이 가게 안쪽에 두 개, 바깥에 세 개밖에 없어서 만원이라고 해봤자 몇 명 안 되지만ㅋ그래도 나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나서 나까지 덩달아 들뜨는 기분이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에 오백 세 잔을 시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 언제 철들래, 군청색 이야기, 자연인과 법인의 차이, 내 대학 자퇴 이야기, 신한은행이 좋은가 국민은행이 좋은가, 너 동방신기 빠순이 질이 벌써 6년이 넘었다 등등 남이 들으면 이건 뭔가? 싶은 주제들이지만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즐겁게 두 시간동안 수다를 떨었다. 이 때만큼은 엄마 아빠가 편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엄마 아빠 진짜 좋아요ㅎㅎ
내 대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이번 1학기 끝나면 자퇴를 하고 반수를 하든 내년까지 공부를 해서 수능을 치든 대학을 다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썩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고, 장래도 나쁘지 않은데다 장학금도 쥐어 주겠다 그냥 조건 맞춰서 간건데 다니다 보니 영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나 혼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런 고민하고 있는걸 부모님께 말한 건 일주일 정도 되었다. 처음 말한 이후로 오늘 처음 이야기 나눈 건데, 애초에 부모님이 재수를 권했을 때 죽어도 싫다고 한건 나였고, 지금부터 공부를 한다해도 니가 가고 싶은 대학은 못 갈꺼라고 부모님은 생각하시더라. 표면적으로는(...) 잘 다니고 있는 학교 그만두고 무리수를 둔다는 것에 대해서 썩 긍정적이지는 않으셨다. 뭐 우리 부모님이야 그럼에도 내가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으실 분들이시지만 고등학교 진학할 때도 그렇고, 대학 진학한 것도 그렇고 최근 어른 말씀 들어서 나쁠건 없다는 인생의 진리ㅋㅋㅋ를 실감하고 있는 나이기에 최대한 조언을 얻고자 하는 입장인지라 무시할 수가 없더라. 솔직히 나도 그렇게 희망에 차있는건 아니고...
그래서 아빠가 한 가지 제안을 하신 것이 일단 1학년은 마치고 휴학을 한 다음에 이스라엘 키부츠에 가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누누히 아빠가 키부츠에 가는 게 어떻겠느냐 권해오셨지만 나는 싫다고 했었는데... 음 이번엔 선뜻 싫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고 말씀드렸다ㅎㅎ 글쎄 이게 진짜 내가 거기 가서 영어회화도 좀 다듬고 국제적인 인맥을 쌓고 싶은건지 아니면 단순한 현실도피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번쯤 가봐서 나쁠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가기로 결정한다면 올해 연말에 당장 떠나야 하는데 소심한 내가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뭐 키부츠도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 나에게 닥친 문제는 월요일까지 사진 15장을 찍고, 스케치 한 장에 그레이 스케일 표현 한 장, 800페이지짜리 분노의 포도를 읽어야 한다는 거다. 시발 과제... 나를 힘들게 하고 이썽...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다음 주가 축제 기간&금요일 석가탄신일이라 월,화요일만 수업이 있고 수요일부터 계속 논다는 거. 와우 씐나라. 이것을 위안으로 삼아 주말엔 열심히 과제나 해야겠다. 하... 여러번 말하지만 나에게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논스톱 피디와 기타 영화, 드라마 제작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내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으당...ㅠ.ㅠ